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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란 무엇인가』 책 읽은 이야기 [서평/독후감]

수수께끼.
 "정의가 영어로 뭐지?"

답.
문과 출신 曰 "Justice."
이과 출신 曰 "Definition."

실제로 내가 위의 질문을 써 먹어 보니 거의 100% 적중이다.
오늘 이야기 할 정의는 Justice다.
한창 인기 있는 책이므로 혹시 읽어보고 싶어하는 분이 있을까봐 미리 이야기하자면 스포일링 있다. 

 

정의란 무엇인가 (Justice : what’s the right thing to do)
마이클 샌델(Sandel, Michael J.) 지음/ 이창신 옮김/ 김영사
2010-05-24 출간

5월 24일에 출간된 책이다. 지금 글 올리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참 새삼스럽다.
6월 초순에 만났던 한 직장인이 요즘 이 책을 읽고 있다고 해서 처음 알게 되었다. '오 제목을 보아하니 쉽지 않은 책인데...이런 책을 읽으시는 분이라니?' 싶었다. 그리고 다음날인가 신문을 펼쳤더니 이 책 전면광고가 나 있었고 인기리에 팔리고 있다고 했다. 광고니까 허풍을 떠는 것이려니 했다. 나는 저자가 공동체주의자라길래『경제와 윤리』에서 배웠던 내용을 이어갈 수 있을 것 같아서 구입하였다. 돌아보면『경제와 윤리』에서는 집단의 방향을 다루는 책이고 『정의란 무엇인가』는 개인의 결정에 관련된 책이라서 맥락은 조금 다르기는 하다. 그래도 어떤 책을 읽은 후 관련된 부분이 있는 조금 다른 책을 추가로 읽는 것은 공부를 넓고 깊게 하는데 크게 도움이 된다.

광고는 허풍이 아니었다. 이 책의 인기는 9월 초순인 지금까지 실감나게 이어지고 있다.
우리과 교수님 중 한 분께서 이 책을 재미 있게 읽고 계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분은 평소에 책을 많이 챙겨보는 분은 아니다. 
토리에도 몇 권 가져다 놓았는데, 관심을 가지는 사람에게 '저도 읽어봤는데 재미있어요'라고 한 마디만 하면 다 산다. 괜찮다는 이야기 많이 들었다면서. 오늘은 토리에 이 책이 없었지만 찾는 사람이 또 있었다.  
비소설부문에서 이렇게 인기를 실감케 하는 책은 최근 몇 년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저자의 한국 강연이 미어터지게 인기가 있었다는 뉴스도 들린다.

제목만 보면 하버드 저자가 '인생은 이렇게 살아야 하는 법이야'라고 설교하는 책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공동체주의자라니 웬지 더 그럴 것 같은 선입견도 든다. '이렇게 하는 게 모두에게 좋잖아'라며 상대적인 기준을 쓸 것만 같고. 실제로 대화나 글을 통해서 이 책 자체나 이 책의 인기에 대한 반응을 보면 자신이 이미 생각하는 정의를 바탕으로 이 책의 내용을 기대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오히려 반대다. 저자는 철저하게 읽는 사람이 주어진 사례 하나하나에 대해서 철저하게 고민을 하게 만든다. 그러면서 우리가 당위성을 판단할 때 무의식적으로 사용하고 있었던 '공리주의', '자유지상주의', '롤스의 정의론', '칸트의 도덕철학', '아리스토텔레스주의' 등의 원리를 알려준다.

이 책의 진가는 바로 그 예시와 사례 하나하나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일들도 다시 생각하게 만들고, 같은 사건을 조금 바꾸어서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어쩜 이렇게 많은 예시를 발굴했을까, 이렇게 수업을 받으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싶다. 저자는 '두 아들이 밥숟가락을 든 이후 계속 식탁에서 정의에 대한 토론을 했다'고 하는데 그 아들들은 어떻게 성장했을까 진심 궁금하다. 누구한테 물어보면 알 수 있을까?

각 사례에 대한 결론은 모두 열어두고 있지만 저자가 결론적으로 주장하고 싶은 정의론은 분명히 있다. 바로 내가 알고 싶었던 '공동체주의'다. 중요한 것은 나중에 나오는 셈이다. 모든 이야기의 방향이 이쪽으로 정리되면서 책이 마무리된다. 
공동체주의는 개인이 사회와 계약적으로 이성적으로 행동한다는 기존의 전제들을 거부한다. 각 사람들은 각자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며 ('서사') 살아간다. 도덕이란 그 이야기 가운데 만나는 고민을 어떻게 해결할지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그 고민은 이성과 의지에 관한 것이라기보다는 해석에 관한 것이다. 내 삶이 어떠한지 혹은 어떠해야 하는지에 관한 해석. 그러한 면에서 공동체주의는 도덕철학에 관한 가장 오래된 학설인 '목적론'과 (똑같지는 않더라도) 통하게 된다. 그리고 내 이야기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포함되기에, 같은 공동체의 사람은 연대와 책임으로 묶이게 된다.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어서 어렵지 않게 읽어내려갈 수 있다. 아, 나는 칸트 부분에서는 진도가 조금 느려지기는 했다. 그래도 번역도 꽤 매끄럽고, 뜻을 파악하는 것이 많이 힘들지는 않다. 오히려 너무 길게 설명하고, 다른 시각으로 다시 설명하고 하다보니 지루하다는 반응도 있기는 하더라.

난 이런 책이 더 좋더라. "아무쪼록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거 아냐?"하는 책들보다 훨씬 읽는 사람을 성장시킨다. 고기를 주는 것이 아니라 고기를 낚는 법을 알려주는 셈이다.

이렇게 뛰어난 교양서적이 잘 팔리고 있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최근 공정한 사회 논의 및 그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각종 비리 사건들과 관련하여 더욱 그러하다. 독자 각자의 양심을 특별히 찌른다거나 하는 책은 아니다. 그러나 이 책이 많이 읽힐수록 사람들은 어떤 일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옳은 것인가 한 번 더 생각하게, 또 생각할 수 있게 될 것이고, 만나서 또한 그런 이야기를 하게 되지 않겠는가.  그러한 담론 자체만으로 얼마나 멋진 일인가. 그리고 그 이야기들이 의미있는 새로운 공감대와 멋진 사건들을 만들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저자는 자신의 소신을 정리한 9-10장에서 정의로운 사회에서는 좋은 삶을 다 같이 고민해야 하며, 어떤 정치 담론이 그 방향을 이끌 수 있을지에 대해 제안을 한다. 정치는 결코 중립적일 수 없으며, 어떠한 삶이 좋은 삶인가에 대한 고민을 갖고 정치를 해야 한다, 동성애나 낙태 문제 등 각 개별 사건 뿐 아니라 시민의 관심사와 미덕을 를 더욱 넓게 끌어내는 정치를 만들어 가야 한다는내용이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떠오르는 책이 2권 있었다.  『회심』과 『하나님의 정치』.
2008-2010년을 이어 기독교계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책이다. 물론 『정의란 무엇인가』만큼 많이 팔린 책은 아니다. 하지만 이번에 토리에서 기독청년아카데미 공동체지도력훈련원 교재를 단체구매 진행하다보니 참가자들이 『회심』은 이미 거의 다 읽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회심』에서, 특히 『하나님의 정치』에서 책 내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 내용이다. 가능하지도 않은 '종교는 정치에 대해 중립'이라는 태도를 취하거나, 동성애 등 몇몇 이슈에만 집착하지 말고, 삶을 아우르는 신앙적이고 바람직한 가치를 정치에 적용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케네디와 오바마를 비교하여 시대가 인정하는 정치의 방향이 바뀌었음을 지적하는 것도 유사하다.

기독교 서적과 일반 비소설 교양서적 모두에서 같은 관심사의 책이 널리 읽히고 있다는 것은 이와 관련된 시대의 요구가 정말 있구나 하고 생각하게 한다. 그래, 얼마나 멋진가. 이 사회에서 꼴통취급을 받아온 기독교인들이 신자 수 확보나 세력 확장에만 애쓰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의 공공선에 대해서 깊이 고민하는 모습이라니!!

결론적으로 『정의란 무엇인가』는 위의 모든 칭찬이 아깝지 않은 괜찮은 책이다.

단 하나 사족처럼 염려하는 것은, '자신의 공동체를 지키는 것이 먼저다'를 말하고 있는 이 멋진 교수가 미국인이라는 사실이다.
자신의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미국의 행동은 많은 다른 나라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과정과 결과가 재앙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개별 사례에 대한 교수의 의견을 따로 깊이있게 들어야 이에 관해 제대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곧 읽을 예정인 『생명의 윤리를 말한다』(마이클 샌델) 에서도 혹시 이에 대해 짚어볼 수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미국은 다른 나라에 대해서 생명공학에 비교우위가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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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루루 2010/09/09 00:27 #

    당초 구입할 예정에 있었는데 번역 품질이 좋지 못하다고 해서 무한정 보류하게 된 책이네요...
  • toribooks 2010/09/09 00:33 #

    사실 '이렇게 바꾸면 의미 전달이 더 잘 될텐데' 싶은 문장이 가끔 나오기는 하더라구요. 그래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만큼의 의미전달은 된 셈이니 그럭저럭 괜찮은 편 정도는 될 듯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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